자폐 스펙트럼 장애(ASD) 또는 유사 발달 특성을 가진 아동은 전형적인 인지 학습 방식으로는 의미 있는 학습 효과를 경험하기 어렵습니다. 보호자나 교사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교육 방식은 ‘자신이 익힌 방식’을 아이에게 그대로 적용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언어 중심, 분석적, 논리적 사고 기반의 접근으로 요약됩니다.
하지만 ASD 아동은 감각처리 방식, 주의 분산 양상, 통합적 사고 경로가 비선형적이며 비언어적 경험 기반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러한 하향식 학습 방식은 학습 회피, 인지적 과부하, 정서적 반발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센터에서 이루어지는 전통적 인지치료도 이러한 학습 구조를 반복할 뿐이며, 아이의 신경발달적 특성에는 충분히 조율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효과적인 학습을 위해서는 세 가지 원칙이 고려되어야 합니다.
첫째, 시각정보 우위 특성을 기반으로 시각자극 중심의 자료를 제공해야 하며,
둘째, 전체적 정보에서 부분을 추론해 나가는 학습 경로, 즉 top-down 방식의 구조화가 필요하며,
셋째, 아이가 흥미를 가지는 주제와 친숙한 자극을 중심으로 학습을 조직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한글을 가르칠 때 자음-모음-음절-단어 순의 전통적인 분절 학습은 음운 인식과 분석적 사고를 요구하며, 이는 비언어적 사고와 시각적 기억 기반의 아동에게 매우 비효율적입니다. 대신 자동차 그림과 ‘자동차’라는 단어를 함께 제시하고 이를 통으로 반복적으로 노출시키는 시각-언어 통합 학습법이 효과적입니다. 이를 통해 아동은 통 단어를 먼저 인지하고, 이후 반복되는 낱글자의 패턴을 자연스럽게 분리해내는 자기주도적 형태 인식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 과정은 ‘통글자 학습법’이라 불리며, 언어 발달이 느리거나 말보다 글을 먼저 깨우치는 아동에게 특히 적합합니다.
수학 역시 유사한 원리가 적용됩니다. 수 개념을 1, 2, 3, 4 등으로 분리하여 개별적으로 가르치기보다는 1~100까지의 숫자판 전체를 보여주고 놀이로 접근하면 숫자 배열, 규칙성, 수 조작 감각이 동시에 형성됩니다. 이는 숫자 감각을 직관적으로 체득하게 하며, 구구단 등 연산 개념도 패턴 인식을 통해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예를 들어 자동차 10대를 이용해 나누는 놀이를 통해 다양한 덧셈·뺄셈 조합을 직접 조작하고, 경험 기반의 수 개념 정착을 유도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학습은 언어가 부족한 아동에게도 적용 가능하며, 말보다 시각·행동·관찰을 통해 학습이 먼저 일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많은 비언어 아동들이 그림책 반복 읽기, 낱말카드 짚기 등을 통해 의미 기반 언어습득을 경험하고, 점차 자발적인 글자 해독으로 확장해 나갑니다.
마지막으로, 많은 보호자들이 조기부터 연필을 쥐어 글씨 쓰기를 강조하지만, 이는 소근육 기능이 미성숙한 ASD 아동에게 불필요한 저항감과 과제회피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초기 한글 교육은 반드시 ‘읽기 중심’, ‘놀이 기반’, ‘감각 친화적’이어야 하며, 쓰기는 충분한 시각적 이해와 조작 능력이 뿌리내린 이후로 미뤄도 전혀 늦지 않습니다.
이처럼 시각자극, 통합적 접근, 흥미기반 자극이라는 세 원칙을 바탕으로 한 학습법은 자폐적 특성이 강한 아동뿐 아니라 전반적인 발달지연 아동에게도 유효한 접근이며, 언어중심 교육에서 소외되기 쉬운 아동의 학습권을 보장하는 데 중요한 실천적 기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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